출처: 월간조선 2011.8
처음 만나는 사람 믿는다 – 한국 13%, OECD평균 34%
- 가까운 관계 특히 가족관계에서 진정성이 결여된 거짓말이 많이 보고된 것은 주목해야 할 사실
- 편법을 이용한 사람이 더 잘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는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접하다 보면, 정직성 가치가 폄훼됨
- 권력층과 ‘가진 자’들이 犯法행태 등이 법의 무력함을 새삼 확인케 하고 동시에 일상의 작은 범법에 둔감하도록 체화시킴.
- 반도국가인 한국은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事大와 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四分五裂되어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옴.
미국 메릴랜드대(칼리지파크) 정치학과 프레드 앨퍼드(C. Fred Alford) 교수는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그린비刊)에서 “한국인의 심리에는 惡이 없다고 생각한다.” 고 단언했다.
심지어 “惡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한국인은 죄가 밉지 사람이 밉냐고 말합니다. 또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도 곧잘 합니다.” 악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악의 당사자, 책임자가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앨퍼드 교수는 1910년 한일합방을 예로 들며, 일제에 병합된 경험을 國恥라고까지 규정하면서도 책임자를 찾지 못한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한일병탄(韓日倂呑)은 커녕 식민지 시대 반민족 행위의 책임자에 대한 정확한 색출이 이뤄지지 않았다. 앨퍼드 교수는 “위로든 아래로든 한번도 내부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던 한국 역사의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말하길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한 가지 커다란 이득은 역사에 대해 (자국민 중에서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악에 대한 불신은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조직된 결과” 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우리끼리 이야기’ 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말은 특정한 목적이 개재됐을 때는 ‘우리 두 사람만’ 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情이 배후에 있는 환상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간의 상호작용을 테두리 쳐 상황에 따라 형성된 친밀한 관계로 묶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이성적인 측면과는 다른 낭만적인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제3자가 개입할 수 없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두 사람만의 친밀한 세계, 따뜻한 情의 세계를 나타낸다.” 정이 악과 죄, 거짓말까지도 무력화시킨다는 것이다.
- 한국인이 기억하는 거짓말은 주로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공동체의 조화와 화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주의(Collectivism)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다. 동양권 사람들은 집단의 가치와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 군대나 직장상사가 하게 되는 집단적 책임감에 의한 거짓말 등은 이러한 문화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문용린 교수 ‘한국인의 거짓말 유형과 정당화 양식 연구’)
- “한국인들이 위법이나 부정을 빈번하게 저지르고 또한 거기에 대해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는 것은 법이나 사회적 정의보다 강력한 규제력을 가지는 것이 인간관계이며 인간관계의 情理라고 보기 때문이다.” (경기대 김시업 교수)
-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법정이나 국회 등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장소에서 거짓말을 한 위증죄가 일본의 171배, 없는 일을 꾸며 고소, 고발하는 무고사건은 217배에 이른다. 그러나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의 2.5배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위증죄는 427배, 무고죄는 542배에 이른다.’이에 대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신뢰수준이 낮은 이유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찾았다. ‘6.25사변 이후 고속경제성장을 거쳐 민주화 달성과정에서 국민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믿지 않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2010.10.27.)
-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의 특성, 계급에 의한 막부정치 등으로 예로부터 단결과 충성의 폐쇄적 조직문화가 깊이 뿌리 내렸고, 메이지유신과 2차 세계대전의 패배 후에도 天皇제도를 존속시킬 만큼 강력한 공동체적 결속력을 유지해왔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체질상 보수적, 조직적, 안정적인 면을 희구한다. 半島국가인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대국 중국의 영향 아래 事大와 自主의 불안한 틈 사이에서 四分五裂되어 단결력을 상실했고, 분열과 경쟁의 습성을 키워왔다. 무능한 정부, 부패한 관료체제에 대한 불신과 저항감이 오랜 기간 쌓이면서 충성의 대의명분이 민생 속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했고, 정치의 反正과 중앙정부에 항거하는 民亂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래서 한국인은 본질상 개혁적․개인적이며, 늘 변화를 꿈꾼다. 정치상황의 불안, 숱한 외침과 빈번한 피란생활 등은 국가와 조직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그 혼란 속에서 국민 개개인은 불가피하게 각자의 생존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생존경쟁을 위한 不法, 非理, 不條理를 정당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짐작된다. 일본보다 한국의 上訴率이 월등히 높은 것도 조직의 룰(Rule)이 個體의 생존을 보호해 주지 못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위증과 무고까지도 꺼리지 않는 반전의 욕구가 습성화된 것으로 추정한다.”(법무법인 충정, 이우근변호사)
- “일본에서는 怨恨을 해결하기 위해 칼로 싸웠으나, 한국에서는 관가에 고변해 재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법제화돼 있었다. 칼이 아닌 말로 싸워야 했기 때문에 무고죄, 위증죄가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
- ‘생존지혜(Survival Wisdom)’라는 개념을 들어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설명하길 “한국은 과거부터 국가 공권력이 사람을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아는 사람’ 중심으로 서로서로 살아남았다. 한국은 고려시대 이래로 공권력이 세금 내는 백성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그 보호가 철저했다. 사무라이들은 평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으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보호해 줬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였으니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혈연, 학연, 지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객관적인 공적 업무를 보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회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그런 공적 시스템이 사람을 보호해 주고, 가족을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사적인 조직이 살아남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문용린 교수)
- “거짓말을 하고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한국인이 갖는 인격의 이중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조선시대 관료의 수탈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노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듯하다. 추수를 10섬 했다 하면 7섬을 수탈당하니 7섬으로 거짓을 告해야 자신에게 5섬이 남아나 식구들의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서울대 황경식 교수)
- “20년 동안 만난 수많은 의뢰인은 하나같이 변호사가 거짓말해 주기를 바란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성직자든 교수든 변호사가 거짓말해 주기를 원하고, 변호사를 속이고 결과만 좋게 해주기를 바란다. 거짓말은 굉장히 논리적이다. 의외로 증거도 많은데 그 이유는 거짓말의 근거를 만들고 증거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범죄자가 거짓말을 계속하면 경찰, 검사, 판사도 으레 거짓말로 알고 응대합니다. 진실은 증거도 없고, 논리도 아니고, 감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논리를 택하기 마련이다. 나는 법정에서 거짓말이 이기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러면 거짓이 승리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이다.”(엄상익 변호사)
- “6.25전쟁은 봉건적 계급사회의 위계를 초토화시켜 다 같이 평등하고 가난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 같은 한국인의 평등지향성이 과도한 경쟁의식과 결부된 시기, 질투, 원망의 사회적 무의식을 낳았다. 현대사가 배양한 한국인의 평등지향성이 오늘의 성공에 큰 자양분이 됐지만 과도한 경쟁의식과 결부된 시기, 질투, 원망, 해코지의 사회적 무의식을 낳았고, 남 잘되는 것 보지 못하는 문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로 이어지게 했다고 판단된다.” 아울러 그는 한국문화의 특성인 ‘他者지향성(Other-Oriented)의 문화’도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문화의 특성인 ‘他者지향성(Other-Oriented)의 문화’도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문화의 특성인 ‘他者지향성(Other-Oriented)의 문화’도 지적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